시화방조제 초입에 위치하고 있으며, 예전에는 국내 최대의 염전이었던 곳.
지금은 관광어촌으로 변모해 있다.
가는 길도 편해서 4호선 전철로 종점까지 가면 오이도역.
역앞에서 바닷가까지 가는 버스편이 있어 갈아타기만 하면 된다.
섬(島)이 아니면서 「섬」으로 불리고, 또 어딘가 모르게 다소 낭만적인 느낌을 주는
분위기가 겹쳐져 무언가 강렬한 인상을 갖게 되는 곳이 「오이도」이다.
오이도가 섬 아닌 섬이 된 것은 1922년에 일제가 염전을 만들기 위해 이곳과 안산시간
제방을 쌓은 뒤부터였다. 그후 오이도는 자동차가 드나드는 섬같은 육지가 되었다.
이곳 지명은 조선 초기에는 오질애(吾叱哀)였다가 성종조에 오질이도(吾叱耳島)로 개칭된 후
정조조에 현재의 이름인 오이도가 되었다.
오이도는 섬의 모양이 마치 까마귀(島)의 귀(耳)와 같아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인근의 옥구도와 함께 일명 옥귀섬(玉貴島)이라고 부른다.
예전에 어느 임금이 배를 타고 가다가 이곳에 표류하였는데, 한 어부가 옥(玉)으로
만든 그릇에 물을 바치자 임금이 깜짝 놀라 귀(貴)히 여기고
옥귀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안말을 중심으로 가운데 살막, 신포동, 고주리, 배다리, 소래벌, 칠호, 뒷살막 등의
자연마을이 있었으나 시화지구 개발 등으로 1988년부터 2000년 사이에 모두 폐동되었다.
현재는 섬 서쪽에 해안을 매립, 이주단지가 조성되어 새로운 삶의 보금자리가 형성되었다.
이곳에는 시흥시의 향토음식인 오이도 굴회덮밥을 비롯한 많은 식당과 횟집이 들어서 있어
미각을 한층 돋우고 있다.
여기선 조개구이와 바지락 칼국수가 제격이다.
소라 껍데기가 붙은 이 그물은 쭈꾸미를 잡기 위한 것이란다.
삼면이 바다여서 만조 때는 출렁이는 바다 내음을, 썰물 때면 살아 움직이는 바다 생물들의
생활모습을 엿볼 수 있는 더없는 명소이다.
더욱이 조선초기에는 군사상 중요시되던 곳이어서 봉화대가 설치되었으며,
조개무지에 올라 앉은 섬이라고 지칭될 만큼 섬 전체가 패총지대이다.
특히 패총은 서해안의 대표적인 선사 유적지로 장차 패총유적공원 등이 조성되면
가족과 함께 나들이 코스로는 최적지로 각광받을 것으로 생각된다.
멀리 몇 사람이 갯벌에서 조개잡이를 하고 있는 듯.
오이도는 지리적으로 대도시와 가깝고 「갯벌」과 「섬」이란 이름이 주는 느낌 때문인지
시ㆍ소설 등 문학작품은 물론 미술, 영화, TV 등 많은 예술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뚝방길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김종철의 시집 『오이도(1984)』가 있으며
이밖에도 많은 시인들이 이 섬을 주제로 시를 썼으며,
소설로는 정동수의 『떠도는 섬』, 윤후명의 「오이도」 등이 있다.
뚝방길에는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벤치도, 파라솔도 있어 봄날 한나절 나들이로는 그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