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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여행/러시아 (2006)

6. 데카브리스트 광장

by 마이욜 2006. 7. 29.

 

12월 당원(黨員)이라고도 하며, 러시아어()로 12월을 데카브리라고 한 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나폴레옹 전쟁서유럽에 원정하여 자유주의 사상을 섭취한 일부 청년장교들이 모체가 되었다.

 

이들은 농노제의 폐지와 입헌정치의 실시를 목표로 내세워 1816년 구제동맹()을,

이어 복지동맹()을 조직하였다.

 

1821년 이후 입헌군주제를 주장하는 북방결사(), 공화제를 목표로 하는 남방결사,

그리고 전(全) 슬라브의 연방제를 내세우는 통일슬라브 결사 등으로 분열되었으나,

혁명기운은 점점 높아갔다.

 

1825년 11월 황제 알렉산드르 1세가 죽은 후 제위 계승문제로 정계가 혼란해진 틈을 타서

무장봉기를 꾀하였다.

북방결사파가 이끄는 수개 연대는 12월 14일 상트페테르부르크원로원 광장에서 거행된

 새 황제 니콜라이 1세에 대한 선서식장에서 선서를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켰으나 곧 진압되었다.

 

남방결사의 지도자 페스텔 등은 사전에 체포되었고, 그 해 말 통일슬라브 파가 조직한 보다

혁명적인 반란도 실패하였다.

 

이 반란 사건으로 파벨 페스텔, 세르게이 무라비요프 등 5명의 주모자가 교수형을 당하고

100명 이상이 시베리아로 유배되었으나, 혁명기운은 러시아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다음에서 발췌)

 

   

데카브리스트 광장으로 가는 길에 멋진 예식용 차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신랑 신부 몇 쌍이 보였다.

 

광장 끝 네바강변에 있는 청동 기마상은 쿠데타로 남편을 죽이고, 황제자리에 오른 독일 출신인

예카쩨리나 2세가 표트르대제의 후계자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하여 1782년 역시 프랑스의 조각가

파르콘에게 이 동상을 만들도록 하였다.

전 유럽에서도 찾을 수 없는 말의 앞다리가 번쩍 들려 있지만 실제 동상의 무게를 오랜 세월

지탱하는 것은 뒤쪽의 말 꼬리가 다리와 함께 삼각형을 이루어낸 조각술에 있다고 한다.

대 시인 푸쉬킨의 서정시 "청동의 기사"에서 그 이름을 따온 것이며, 지금도 마르스광장의

꺼지지 않는 불과 함께 뻬쩨르의 젊은이들이 결혼식이 끝나면 이곳을 방문하여 꽃다발을 바치고,

사진을 찍을 정도로 표트르대제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짐작할 수 있다.

 청동 기마상은 말발굽 아래 커다란 뱀이 깔려 있었는데 그 뱀은 프랑스를 의미한다고.

 

               

  멋진 기마상과 구름이 있는 하늘을 배경으로 한컷.

 

 이 신랑 신부는 따로 결혼 예식이 없이 바로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하는 것이 결혼식이란다.

 

 

단순히 야외 촬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친지들도 함께하는 결혼식이라

                                          참 검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곳에서 결혼을 한 신랑 신부들이 이 멋진 차로 신혼여행을 떠나리라.

                         부디 앞날에 행복과 즐거움으로 꽈악 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