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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이야기

사진가 임응식

by 마이욜 2006. 3. 30.

 

 
 
 
오랫만에 책장정리를 하다  아버님에 관한 글이
 눈에 띄어 읽기 시작했다.
 
진작에 예술가 이야기에 올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올려본다. 
 
 
임응식의 작품세계
이 경 성

 사진작가 임응식을 생각할 때 나는 왜 그런지 프랑스의 사진작가 "까르띠에 브레송"을 연상한다.

아마 이 연상작용은 두 사진작가 사이의 공동성과 그들 작품세계가 갖고 있는 깊은
휴머니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진이란 인간생활의 기록이고 진실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임응식은 깊은 애정을 갖고서

인간 생활의 구석구석을 통찰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눈은 과학자가 자연을 분석하고 연구하듯이 인간 세상을 바라다 본 후

그 생의 본질을 잡으려고 한다.
 따라서 그는 일찍이 사진의 정도(正道)는 리얼리즘에 있다고 주장하고 평생 그 길을 더듬어 왔다.

한편 유명한 「결정적 순간」이라는 말을 생각해 낸 「브레송」은 그의 작품의 이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있다.
「사진은 생기고 나서 기술적인 면 이외에는 변하지 않고 그 기술적인 면은 나에게 있어서

그리 대단한 관심사가 아니다. 사진을 찍는 것은 간단한 일 같이 생각된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다양하고 걷잡을 수 없는 행위이고 촬영자들 사이에 있는 유일한
공약수는 카메라라는 도구뿐이다.
 이 기록용의 기계에서 생기는 것은 낭비와 점점 강해지는 긴장과 미치광이 같은 생태학적
파국에 찬 세계의 경제적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대량생산된 사진, 즉 연출된 사진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사진의 가치를 판단한다면 그것은 심리학적 또는 사회학적인 기준 위에 서 있는 것 뿐이다.

세상에는 사전에 연출한 후 촬영하는 사람도 있고, 미리 마음속에 있는 이미지를 찾으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카메라는 스케치북이고 직관과 내밀적인 마음의 움직임에 따르는 도구 즉 시각적인 언어에 의한 물음과 결정을 동시에 이룩하는 순간의 지배자이다.  세계에 의미를 주기 위하여 우리들은 파인더에 의해서 잘리어 지는 것과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위해서는 집중력, 정신의 규율, 감수성, 조형감각이 요구된다.

간소한 표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수단을 대담하게 간소화 시켜야 한다.

 사진을 찍을 때는 늘 대상과 자기에 대하여 최대의 존경을 바쳐야 한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일순에 사라지는 현실의 표면에 모든 가능성이 응집한 순간에 숨을 죽이는 것이다.

 이미지의 정복이 육체적 및 지적 환희에 전환하는 것은 그 순간이다.

 촬영이란 인식이다. 사실 자체와 그 사실에 의미를 주는 시각적으로 잡은 형태 위의 구조와를 동시에 일순속에 「인식」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의 지성과 눈과 마음을 동일 선상에 놓는 것이다. 
 
나의 경우 촬영이란 다른 시각적 표현과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이해의 방법이다. 즉 그것은 부르짖음과 같고 자기를 해방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자기의 오리지널리티를 입증 또는 주장하기 위한 방법은 아니다.
그것은 사는 방법 그 자체인 것이다.」


 약간 인용이 길었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브레송」의 이야기들은 사진의 본질은 물론이거니와 사진작가 임응식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 무엇보다도 크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된다.

 그들의 공통성이란 첫째 휴머니티이고 다음에 그 휴머니티를 인간 세상에 생생한 생태학적 현상속에서 잡으려는 리얼리즘인 것이다.
따라서 사진작가 임응식은 사진이 예술이라고 오랜 세월 무지와 투쟁하여 그 경지에 올려놓고, 그 다음에는 사진을 평면예술로서 마치 회화와 같이 이해하려는사람들의 생각을 고치려고 노력했다.

 그는 일찍이 사진을 국전의 한 부분에 넣어 일반의 인식을 새롭게 하고자 고독하고도 먼 투쟁의 길을 걸어 왔다.

그것은 「국전」이라는 기구가 사진을 예술로서 성장시키기에 알맞다고 생각하기보다는후진적인 생각에 충만되어 있는 우리 나라 문화계에 있어서 우선 국전에 입문함으로서 사진도 예술이냐 하는 무지를 없애자는 것이었다.

사실 그의 이 생각은 전적으로 우리의 현실로 보아서 옳았고또한 그 결과는 좋은 결실을 보았다.


 그렇다고 그는 사진이 국전의 식구가 됨으로서 비로소 예술이 된다고 생각지 않는다.사진은 이미 국전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간에 현대 테크놀로지가 생산한 훌륭한 예술이기 때문이다.

 다만 무지한 대중을 계몽하기에 가장 알맞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는 그도 사진을 찍는다고 다 사진작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혼돈된 한국 사단(寫壇)의 정리를 위해 고심을 하였다. 그러한 노력의 하나가 미술대학에 사진부를 설치함으로서 사진의 아카데미즘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 행위속에는 또 하나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것은 기존세대에 대한 설득보다도 신세대에 대한 올바른 사진 교육만이 사진의 정상적인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국립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사진강좌를 창설하고 이대, 홍대 등 여러 미대에 사진강사로 출강하였다.'

 이 사진의 아카데믹화는 결국 사진의 정상적인 발전을 위해 큰 도움이 되었다.이와 같이 사진의 아카데미즘 확립에 노력하는 한편 그는 사진활동에 직접적인 행동으로 협회같은 집단을 만들고, 단체적인 운동을 하였다.

그러나 이념을 달리하는 여러 사진가가 있기에 그는 창작사진 등 특수한 명칭으로서 그의 행동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진작가로서 무엇보다도 핵심적인 일은 작품을 통한 행동으로 창작의 의욕을 돋구었다는 사실이다.

 언제나 사진기를 몸에 지니고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세계의 움직임과 순간적으로 자기의 눈에 잡힌 인간세상의 어느 순간을 결정적으로 잡는 그 자세가 지속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사진작가 임응식은 교육. 단체활동, 작품활동의 세가지 방법을 통해서 사진에 충실하고 자기에 충실했던 것이다.

「외유내강」 이것이 바로 사진작가 임응식의 인상이라면 그는 「옳지로다」하는 새로운 조어(造語)를 쓰는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이다.

그는 어느 의미에서는 좋은 의미의 고집과 의지로 뭉친 사람이다.  이 고집과 의지로서 그는 근 30여년에 걸치는 한국 사진계의 선각자 및 지도자가 되고, 한국의 사진을 오늘에 있게끔한 사실상의 공로자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나는 사진작가 임응식을 한국 현대 사진의 정통을 수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사진을 미술적인 차원으로서 끌어올리는데 노력하고 그 일이 성취되자 이번에는 사진과 회화가 다르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같은 평면 예술이면서 회화와 사진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그러기에 회화적인 조형성만을 추구하는 사진은 
어느 의미에서는 사진의 정도를 벗어난,말하자면 사진의 방법을 사용한 회화라고 보고있다.

 사실 그의 말대로 오늘의 평면 예술에는 사진술을 이용한 많은 회화와 판화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비록 사진술을 썼다손 치더라도 그들의 궁극의 목적이 회화이므로 사진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진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하여 사진작가 임응식은「사진은 기록성과 진실성을 담은 평면예술이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1953년 서울
              
                  


                                                                          1953년 부산      


                           
              


                                                     백담사에서 촬영 중
                                                                     제자가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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