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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여행/러시아 (2006)

2. 봄의 궁전으로 불리는 예카테리나 궁

by 마이욜 2006. 7. 25.

페테르부르크에서의 첫날.

아침은 과일 디저트까지 확실하게 챙겨 먹고 예카테리나 궁전으로 향했다.

 

 

예카테리나 궁전은 세계 8대 기적이라고 불리는 호박방이 있는 곳이다.

정문에서부터 '황제의 마을'답게 숲, 조각상, 연못 등 모든 것이 화려하게 조화를 이루며

궁전을 더욱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었다.

 

이 궁전은 예카테리나 여제의 명령으로 1756년에 완성된 러시아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는 궁전이다.

그중에 호박방은 제2차 세계대전시 독일 군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페테르부르크 도시 건설

300주년을 맞이하여 24년 동안의 복원공사 끝에 32년 만에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한다.

 

 

 

 

 

 궁 앞에 도착하니 우리를 환영하는 애국가와 아리랑을 연주해 주기 시작했다.

          어찌 물어보지도 않고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아차렸는지! ㅎㅎ

 

 

 

                    계단 벽에 놓여 있는 도자기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듯...

 

 

 

 

   

방이 온통 금으로 장식된 방에도 관광객들로 붐비고 천정화도 한몫

 

 

       벽난로도 모두 무늬로 가득 찬 도자기로 화려함을 더해 주고

 

                          이다음에 구경 한 방이 바로 그 유명한 호박방.

   정작 보여주고 싶은 호박방은 복원하는데 든 비용이 1200만 달러,

    모두 6톤의 호박으로 장식이 된 방인데 촬영이 금지 돼 있어 안타까울 뿐.

 

예카테리나 여제는 16세가 되던 1745년 피터대제의 손자 피터 3세와 결혼한다.

당시 피터 3세는 왕위계승권자였고, 예카테린의 시어머니인 엘리자베타가 제위 중이었다.

 

결혼 첫날밤부터 그네들은 이미 예사롭지 않았다.

'원치 않은 결혼을 했다'라고 고백하고 같은 침실 쓰기를 거부한 피터 3세의 태도에

예카테리나는 그녀의 애정행각을 시작한다.

 

그녀의 처음 상대는 체리니쇼프공작이라는 사람이다.

그녀의 체리느쇼프家와의 인연(?)은 아주 남달랐는데

체르니쇼프와의 애정행각이 발각되어 그가 국외로 추방된 와중에도 그녀는 그의 두 형제들과

계속 관계를 가졌고, 종국에 체르니쇼프 형제들을 모두 감옥에 보내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그들 형제들에게 연애편지를 쓰는 등의 아주 각별한(?) 관계를 과시하였다.

 

그 외에도 체르니쇼프가 국외 추방당한 사이에 러시아 주재 스웨덴 대사 폴렌베르그를 그녀의

침실로 끌어들였고,

급기야 그녀 1750년 애인 귀족 살티코프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출산하자,

시어머니 엘리자베타는 그녀를 압박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녀의 애정행각은 끊임없었고, 시어머니 엘리자베타가 죽고, 남편 피터 3세가 즉위하자

그녀는 그녀의 연인들과 공모하여 이른바 침실 쿠데타(?)를 일으킨다.

 

그리곤 그녀는 러시아 최고의 황제 짜르에 등극하고

그녀의 불결한 애정행각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영토를 최대로 확대하는데 기여한 짜르로서 피터대제와 함께 The Great라는 칭호를

받는 여제가 된다.

 

                                                               <이 이야기는 바이 러시아 21 카페에서 발췌>

 

  <에르미타쥐 박물관의 예카쩨린 대제 초상화>

 

 

 

 같이 여행 한 동창 권 교수는 내 얼굴이 예카테리나 얼굴처럼 볼 색갈이 화사하다나?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