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立春)날 먹는 시식(時食)으로 오신채(五辛菜)라는 것이 있었다.
다섯 가지 매캐한 모듬나물이다. 시대에 따라, 지방에 따라 오신채의 나물 종류는 달라지고 있으나
다음 여덟 가지 나물 가운데 노랗고 붉고 파랗고 검고 하얀, 각색 나는 다섯 가지를 골라 무쳤다.
파, 마늘, 자총이, 달래, 평지, 부추, 무릇 그리고 미나리의 새로 돋아난 싹이나 새순이 그것이다.
노란 색의 싹을 한복판에 무쳐놓고 동서남북에 청, 적, 흑, 백의 사방색(四方色) 나는 나물을 배치해
내는데, 여기에는 임금을 중심으로 하여 사색당쟁을 초월하라는 정치화합의 의미가 부여돼
있었던 것이다.
임금이 굳이 오신채를 진상받아 중신에게 나누어 먹인 뜻이 이에 있는 것이다.
또한 일반 백성들도 그로써 가족의 화목을 상징적으로 보장하고 仁, 義, 禮, 智, 信을 그로써
증진하는 것으로 알았으니 나물의 철학이 아닐 수 없다.
세상 살아가는데 다섯 가지 괴로움이 따르는데 다섯 가지 맵고 쓰고 쏘는 이 오신채를 먹는 것은
인생오고(人生五苦)를 참으라는 처세의 신채교훈(辛菜敎訓)이라 한다.
옛 말에 오신채에 기생하는 벌레는 고통을 모른다는 말도 있듯이 고통에 저항력을 길러주는
정신력 증강 음식이기도 했던 것이다. 또 오신채는 자극을 주는 정력음식이다.
"선원청규(禪苑淸規)"에 절간의 수도승은 오훈을 금한다 했는데 바로 오훈이 정욕을 자극하는
오신채이기 때문이다.
옛 한시(漢詩)에 여인이 젊고 예쁘고 신선하다는 것을 표현할 때 신채기(辛菜氣)란 말을 쓰고 있으며,
여인의 정욕을 마늘 기운,곧 산기(蒜氣)라 표현했음도 이 신채가 정력을 주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지루한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입춘날에 톡 쏘는 매캐한 신채만을 골라 먹었던 오신채 시식(時食)은
한 해를 새 출발하는 청량제요, 자극제로서 십상이 아닐 수 없다.
오색을 갖추었으니 미학적이요, 정신이 담겼으니 철학적인 것이 입춘날의 오신채이다.
흐르는 세월에 눈 흘기며 달력을 보다 오늘이 입춘이길래 ...
입춘에 무쳐먹는 나물이야기로 애꿎은 심사를 달래본다.
'이런 저런 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절대로---우리 들꽃과 함께 (0) | 2007.02.19 |
---|---|
[스크랩] 마추비추(Machu Picchu)로의 여행 가보기 (0) | 2007.02.08 |
새해에는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 ! (0) | 2007.01.09 |
한 해를 보내며 띄우는 시 (0) | 2006.12.31 |
난 그럴거예요! (0) | 2006.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