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는 아직도 발굴 중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한 후 이태리 남부로 이동 해
2000년 전 베스비오스 화산 폭발로 화산재에 덮였던 비운의 도시
폼페이에 도착.
로마에선 폼페이까지 270 km 약 세시간 반이 걸렸다.
300년에 걸쳐서 발굴을 하고 있는데 아직도 발굴 중이다.
신전은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 거의 형태가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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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 로마 초기에 전성기를 맞이한 폼페이는 고대 도시로서는 규모가 상당히 컸으며
인구는 2만~5만에 이른것으로 추정된다.
인구가 일정하지 않은 것은 인구의 계절적 변동폭이 크기 때문이었다
폼페이에서는 대폭발이 있기 이전인 63년 2월에도 큰 지진이 일어나 큰 피해를 입었으며,
그 뒤 다시 복구되어 전보다 훨씬 훌륭한 도시로 재건되었으나,
79년 8월 베수비오 화산의 대폭발로 2∼3m 두께의 화산력(火山礫)과 화산재가
시가지를 덮어버렸다.
당시의 분화상황은 소(小)플리니우스가 실감있게 전해주고 있으며,
대부분의 주민은 참화를 면했으나 2,000여 명이 사망하였다. 분화가 멎은 뒤
재보(財寶)를 발굴한 사람도 더러 있었으나, 15세기까지 폼페이의 존재는 잊혀졌다.
16세기 말부터 소규모 발굴이 시작되고 1748년부터 본격 발굴에 착수하여 꾸준히
발굴이 계속되었으며, 옛 시가의 거의 절반 정도가 발굴되었다.
벽화를 포함한 초기의 발굴품은 대부분 나폴리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나,
가급적 현지에서 복원한다는 방침이다.
전성기에 갑자기 멸망하였으므로, 당시 로마 도시의 일상생활을 자세히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들이 발굴되었으며, 그것들은 상당히 쾌락적이고 현세 향락적인
도시 생활을 하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폼페이의 많은 벽화를 통하여 유품이 적은 헬레니즘 회화를 엿볼 수 있다.
- 두산백과사전 발췌-
한쪽에 발굴된 갖가지 발굴품을 모아 놓고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화산재로 화석이 된 사람도
폼페이 옛 도시를 구경하고 나와서
점심은 현지식이었는데 메뉴는 늘 먹는 스파게티.
식사 중에 이태리 가수(?)가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컨쏘네를 불러 주어
평소보다 멋진 식사 시간이 되었다.
비록 유로화를 축 내긴 했지만...
이 곳도 가로수는 우산 소나무가 멋지게 자라서 그늘을 만들어 주고
폼페이에서 소렌토까지는 기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