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아! 타지마할 (인도)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타지마할을 보러 가는 날이다.
얼마나 아름다울까?
기대를 하고 간 타지마할!!!
흥분한 나머지 사진까지 삐딱하다.
타지마할 입구의 모습
바야흐로 타지마할의 멋진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니 가슴이 두근두근
인도에서는 타지마할이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려진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건물” “알라신의 왕좌” 그리고 “인도의 보석”.
뭄타즈 마할 황후의 유골을 위한 거대한 무덤으로 지어졌는데 1632년,
황후의 남편인 샤 자한황제가 그의 죽은 아내에 대한 사랑의 징표로서
이 무덤을 짓기를 명령했다.
타지마할은 웅장한 건축과 탁월한 아름다움으로 4세기에 걸쳐 많은 방문자들과
순례자들을 놀라게 했으며 오늘날 인도에는 이슬람교, 힌두교, 그리고 불교를 포함한
많은 종교가 있지만 타지마할은 인도가 주로 이슬람 국가였을 때 지어졌다.
1526년부터 1858년까지, 인도는 무굴 황제들에 의해 통치되었다.
무굴은 이슬람이었으며 현재 이란인 페르시아 출신이었다.
그들은 페르시아 문화와 건축, 그리고 예술을 인도로 가져왔다.
타지마할을 주관한 사람은 코람왕자로 태어난 샤 자한이었다.
그는 첫째 아들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심할 여지없이 그의 아버지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었고 무굴황제가 될 운명이었다.
그는 훌륭한 교육을 받았고 매우 지적이고 교양 있는 사람이었다.
후에, 왕자의 아버지는 그에게 “샤 자한”라는 이름을 주었는데,
이것은 “세계의 왕”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가 15살이 되었을 때, 샤 자한은 궁전에서 한 젊은 여자를 만났다.
둘 다 서로에게 첫눈에 반했다. 이 페르시아 여자는 아리주만드 바누 공주였고,
이 두 사람은 5년 후에 결혼하였다.
그들의 굉장한 사랑은 왕궁의 시인과 역사가에 의해 기록되었다.
그들은 떨어질 수 없었고 아리주 만드는 인도제국 전체에 걸친 군사 작전에서까지
그의 남편과 동행했다.
왕비는 그의 남편의 친구였으며 조언가였고, 연인이었으며 그 사이에 14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1631년, 샤 자한과 왕비는 18년 동안 결혼생활을 했으며 그가 인도의 황제가 된 지
3년이 되었을 때, 비극이 발생했다.
그때는 왕비가 임신한 지 9개월째였다.
샤 자한 왕은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아그라시를 떠나 그의 아내와 군사를 데리고 원정을 갔다.
그들이 궁정을 떠나 있는 동안 왕비는 그들의 14번째 아이를 출산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샤 자한은 철저하게 절망했다. 왕궁 역사가들은 이렇게 적고 있다.
“ 왕은 비통함으로 바다가 폭풍으로 날뛰듯이 울었다… 그 후 한 주 내내,
폐하는 공적인 자리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끊임없는 눈물로 그는 안경을 써야 했으며, 그의 머리는 회색으로 변했다.
황제는 2년 동안 비탄에 잠겼으며, 역사가들은 그가 결코 그의 제국을 운영하는데
열정을 보이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대신에 샤 자한은 예술과 건축에서 위안을 찾았다.
그의 아내가 죽은 지 6개월 후에, 그는 그의 아내를 위한, 그들의 사랑을 위한
거대한 기념물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이 기념물은 왕비의 묘와, 장식용의 정원과, 다른 건물들로 이루어졌다.
아그라시 샤 자한의 궁전 근처의 강 둑 위에 놓인, 그것이 타지마할이 되었다.
이 시기에, 무굴 제국은 최고의 절정기였으며 인도는 아주 부자 국가였다.
그 결과로 샤 자한은 타지마할을 계획하고 짓는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최고의 예술가와 장인이 전 아시아로부터 불려졌다.
책임을 맡은 건축가는 페르시아 기술자이자 점성가인 우스타트 아흐마드였다.
동상을 만드는 조각가, 돔(원형 지붕) 디자이너, 돌에 새기는 조각가, 서예가,
회계사들과 건설 감독들이 페르시아와 시리아, 터키, 그리고 인도로부터 왔다.
마찬가지로 건물과 장식용의 재료들은 아시아와 중동 각지에서 온 것들이었다.
중국에서 온 옥과 티베트의 터키석, 그리고 미얀마의 호박, 40종류가 넘는 보석들이 있었다.
건물의 주요 재료들은 흰색의 대리석과 빨간 사암이었다.
20,000명의 사람들과 1,000마리의 코끼리가 23년 동안 일했고 1653년 타지마할이 완성되었다.
타지마할 그 자체는 입구로부터 300 미터 떨어진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원으로 둘러 싸여 있다.
4개의 큰 탑이 각 모퉁이로부터 솟아있고, 중앙에는 크고 하얀 둥근 지붕이 있다.
타지마할은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안에는 2개 층에 8개의 방이 있다.
중앙의 방은 8 각형이며 황후와 샤 자한 황제의 유골이 들어있다. 종종 사람들은
타지마할은 “거인에 의해 지어지고 보석 세공인들에 의해 마무리되었다”라고 말한다.
타지마할의 벽과, 바닥, 문, 천장과 모든 건물들은 아름답게 장식되었다.
한 가지 기술은, 아름답게 빛나는 일정한 무늬를 만들기 위해 보석을 대리석에
박아 넣은 방법(상감 법)이었고, 또 다른 기술은, 빨간 염료를 가지고 하얀 벽에
섬세한 꽃무늬를 만드는 방법이었다.(*다음 글)
너무나 우아하고 아름다운 타지마할
긴 정원은 입구부터 타지마할까지 펼쳐져 있다.
정원은 페르시아 스타일이며, 이슬람의 성스러운 숫자인 4에 기초한 모양으로 되어있다.
거기에는 중앙을 가로지르고 정원을 4개의 사각형으로 나누는 두 개의 대리석 수로가 있다.
수로 옆에는 죽음을 상징하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서있다.
각각의 작은 정원은 또한 오솔길로 4개의 화단으로 나뉘어 있다.
정원은 세심하게 설계되어 정원의 어느 곳에서도 보아도 무덤의 전체모습이 가려지지 않는다.
묘와 입구의 중간에 위치한 정원의 중심에는, 물과 연꽃이 담긴 높은 대리석 수조가 있다.
이 수조는 물에 타지마할이 완벽하게 비치도록 설계되었다.
타지마할의 양쪽에는 빨간 사암 건물들이 있다.
하나는 회교 사원이고 다른 것은 휴식의 집이다. 다른 모든 회교 사원과 마찬가지로,
이 사원은 메카를 향하고 있으며 기도하는 사람을 위해 사용되었다.
정면의 작은 대리석 조각은 거울처럼 타지마할을 잘 비추기 위해 매끄럽게 되어있다.
이 사원의 바닥은 빨간색의 벨벳 색으로 빛나고, 천장엔 아름다운 몽환적 무늬가
그려져 있다.
양쪽의 쌍둥이 건물은 회교 사원이다.
그것은 크기와 설계에서 동일하다. 그것은 메카를 향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도를 위해서는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그것은 휴식의 집으로 지어졌고, 오직 건축적인 균형을 위해서 지어졌다.
그래서 묘는 양쪽에 두 개의 동일한 건물을 갖게 되었다.
타지마할을 만든 건축가와 기술자들은 그것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높이기 위해
매우 특별한 시각적 효과를 이용했다.
첫 번째 효과는 반복의 이용이었다.
예를 들어 입구의 아치는 타지마할과 같은 모양이다.
묘 쪽을 향해 걷기 시작하면, 그것은 크기가 커지는 것처럼 보이고
돔이 점점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뒤로 걸어 보니 정말로 더 커 보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건물의 기반에 도착했을 때, 그것은 엄청나고 거대할 것이다.
다른 인상적인 효과는 서예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시각적 착각이다.
코란의 성스러운 글귀가 타지마할 자체를 포함한 많은 건물을 장식하고 있다.
그러나 글귀들이 얼마나 높은 벽이나 천장에 있든지, 그의 크기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이 효과는 글씨의 길이를 점차 확대함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입구를 배경으로 멋진 타지마할을 보면서
함께 간 선배 한분은 그곳엘 들어서자마자 감동의 눈물을 쏟아 내고...
우리도 덩달아 감동의 도가니로 빠져들었음을 고백하며.
언제 또다시 와서 달밤의 황홀한 타지마할을 볼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