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풍경이다. 물속에 왕버드나무 30여그루가 뿌리를 박고 자라고 있는 모습이란! 주산지를 찾은
사람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연못은 주왕산 자락의 단풍을 담고, 몸을 비튼 왕버드나무를 담고, 구름을 담고 흔들린다.
경북 청송 주산지. 겨우 6,000평이 넘는 크기의 연못. 길이가 약 100m, 너비가 50m, 수심이 7∼8m 밖에 되지 않지만
'연못'에 담긴 신비로움만은 6만평 넓이의 호수에 뒤지지 않는다. 조선 숙종 때인 1720년 만들어진 주산지는 대개의 저수지가
그렇듯 농사를 짓기 위한 용도로 조성됐다. 아직도 주산지 아래의 60여 가구는 이 물로 농사를 짓는다. 주산지는 아무리 가물어도 지금까지 바닥을
드러낸 적이 한번도 없다고 한다. 새벽녘 주산지를 찾아나선다. 왕버드나무가 안개 속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주산지에는
물속에 뿌리를 내린 30여그루의 왕버드나무가 있다. 그 가운데 10여그루는 수령 300∼500년 된 고목이다. 안개를 허리에 두르고 물속에 서
있는 버드나무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그 모습을 그리며 주산지로 간다. 여명 속 주산지를 깨우는 것은 새소리다. 딱따구리
소리가 '딱딱 따그르르르' 하며 숲을 울린다. 황조롱이와 수리부엉이가 푸드덕 날갯짓을 한다. 참새 소리도 들린다. 주산지의
모습은 신비 그 자체다. 안개가 가득하다. 바람이 부는 대로 안개가 천천히 쓸려다닌다. 시간이 지나자 깊은 주름의 버드나무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물속에 뿌리를 박고 있는 모습이 기이하다. 자세히 보면 똑같은 나무가 아래 위로 자라고 있다. 연못은
나무를, 산을 그대로 비춘다. 물에 비친 대칭의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연못 속 잉어들이 피워올리는 거품이 수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주산지는 최근 몇년간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사진작가들이나 눈밝은 여행자들 정도가 주로 찾았었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로 입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주산지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왕버드나무에 연둣빛 새순이 올라오는 봄 무렵과 주왕산 단풍이 흘러내리는 가을. 봄에는 연초록 새잎에 투명하게 부서지는 봄
햇살이 예쁘고, 가을에는 붉게 물든 주왕산 단풍을 배경으로 놓은 물빛이 아름답다. 가을 주산지는 지금이 좋을 때. 단풍든
주왕산을 병풍처럼 두른 주산지를 볼 수 있다. 물안개 피는 새벽녘도 좋고, 단풍이 제 빛깔을 쨍하게 내는 한낮도 좋고, 산그림자가 연못가로
슬금슬금 내려오는 저녁 무렵도 좋다. 귀기어린 나무와 아득한 물안개, 물안개를 뚫고 수면 위로 솟아오르는 물고기들과 낮게
지저귀는 새떼들…. 주산지가 보여주는 가을 풍경이다.
글〓NAVER 굿데이 /최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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